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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352산-숨겨진우리산

334.경남 합천 악견산(634m)임진왜란 의병의 혈흔이 남은 큰바위산(2022.10.9)

by 日新우일신 2022.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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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땅히 의분강개(義憤慷慨)하여 떨쳐나설 항일 정신의 굳건한 기개가 우뚝한 합천의 큰바위산 악견산을 오르다 

■ 산행기록 개요

1. 산 이 름 : 악견산(嶽堅山,산림청숨겨진우리산 234번째/300대 명산)
2. 위 치 : 경상남도 합천군
3. 높 이 : 634미터
4. 산행일시 : 2022. 10. 9.(일) 11:10-15:05 (3시간55분, 순수산행시간 3시간 20분 이내)
5. 산행거리 : 6.8Km
6. 산행코스 : 용문교(원오선원) 주차장 → 마당바위 → 암봉 → 의룡산 정상 → 악견산 정상 → 악견산성 → 합천호 주차장
7. 동행자 : 엠티산악회 27명

 

■ 산행 이동 경로 (GPS 궤적)

 

(앞선 의룡산 산행기에 이어서 계속됩니다.)

https://hl2sej.tistory.com/entry/%EA%B2%BD%EB%82%A8-%ED%95%A9%EC%B2%9C-%EC%9D%98%EB%A3%A1%EC%82%B0

 

경남 합천 의룡산(481m) 용처럼 꿈틀거리는 옹골찬 바위산(2022.10.9)

『 근육질 바위의 용틀임이 느껴지는 합천 의룡산 암릉의 멋스러움 』 ■ 산행기록 개요 1. 산 이 름 : 의룡산(儀龍山, 대한민국 1,000대 명산) 2. 위 치 : 경상남도 합천군 3. 높 이 : 481미터 4. 산행

hl2sej.tistory.com

 

■ 숨겨진우리산 악견산 산행 후기 및 사진 정보

- 기록의 편의상 산행기를 나눠 적지만 오늘의 목표는 악견산이다. 막상 둘러본 악견산은 임진왜란의 전설과 악견산성, 합천댐 조망 등 지역 명산으로서의 상징성이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정작 암릉산행의 재미만 보자면 의룡산이 더 훌륭했다는 느낌도 들었다.

 

- 이슬비에 젖은 바위가 미끄러워 조심스러웠다. 평소 캠프라인 등산화를 애용하여 최근 모델로 한 켤레 더 장만하였더니 젖거나 언 바닥면에서 접지력이 예전 모델보다 못해서 몇 번씩 나가떨어질 뻔 했었다. 정상부 바위에서 살짝 미끄러지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듯이 악견산은 전체적으로 신발 밑을 조심하며 걸어야 할 것이다.

 

- 경남 합천군 대병면에 자리하고 있는 악견산은 금성산, 허굴산과 더불어 합천의 삼산으로 불린다. 세 산은 합천호 부근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들쭉날쭉 빚어내는 경관이 수려하고도 야무지다. 

악견산은 합천댐 설치로 더욱 돋보이게 되고 유명해졌다. 일반적으로 산의 정상은 바위봉우리로 되어 있거나 둥그스름한 봉우리로 되어 있는데 이 산의 정상은 집채만한 큰 바위들이 수없이 쌓이고 엉켜 정상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산에서의 조망은 서쪽 능선따라 오르면서 뒤돌아본 합천댐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악견산에는 임진왜란 때 왜적과 격전을 벌였던 악견산성이 남아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민중의 영웅으로 이름을 떨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전설이 담겨 있어 의구한 역사도 깃들어 있는 곳이다. 악견산성(경남기념물 제218호)은 1439년(세종 21)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으로 임진왜란 때(1594년) 류성룡의 지시를 받아 성주 목사로 있던 곽재우가 보수공사를 했다고 한다.(산림청 자료 참조)

 

- 악견산은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꽃들로 어우러져 있다. 악견은 큰 산악 岳 굳게견 堅으로 큰 바위산 이라는 의미다.
악견산은 선비들의 의병정신이 깃들어 있는 산이다. 악견산성은 임진왜란때 권양, 권해 형제, 박사겸, 박엽 등 합천의 선비들이 의병을 모아 축성 왜적과 싸웠던 역사의 현장이다.
왜적이 장기전을 기하자 금성산 바위에 구멍을 뚫어, 악견산과 줄을 매어 붉은 옷을 입힌 허수아비를 띄워 달밤에 줄을 당기니, 흡사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다니는것 같아 이것을 본 왜적은 곽재우 장군이 왜적을 전멸시킬것이라며 겁에 질려 도망쳤다는 전설이 풍미한 곳이기도 하다.(합천군청 홈페이지 참조)

 

 

▼ 의룡산 산행기에 이어~~ ▼

 

 

▼ 의룡산에서 악견산까지는 크고 작은 언덕과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크게 힘든 구간은 없지만 역시 바위들이 자주 나타난다. ▼

 

 

▼ 가야 할 악견산까지의 능선길.

왼쪽 금성산과 그 너머로 황매산에 구름이 걸려 있다. ▼

 

 

▼ 돌아본 의룡산과 전위암봉. 

 

 

▼ 소룡산과 멀리 오도산이 아득하게 보인다. ▼

 

 

▼ 당겨본 오도산과 그 왼쪽 미녀봉 마루금. ▼

 

 

▼ 등로는 점점 더 고도를 낮춘다.

덕분에 숲 사이로 보이는 악견산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

 

 

▼ 가장 낮은 지점의 안부를 통과하면 온전한 오르막 구간이 시작된다. ▼

 

 

▼ 발밑에 탐스러운 알밤이 떨어져 있다.

까서 기념으로 들고올까 하다가 숲속에 던지고 말았다. ▼

 

 

▼ 촉촉한 솔숲길을 걷는 즐거움도 있지만 오르막은 늘 힘든 법이다. ▼

 

 

▼ 한바탕 땀을 흘린 후에야 용문사와 이어지는 능선 갈림길에 도착했다. 

 

 

▼ 갈림길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잠시 앉아서 숨을 돌렸다. ▼

 

 

▼ 본격적인 암릉 오르막이 시작되고, ▼

 

 

▼ 이 일대에서만 볼 수 있는 계단들이 자주 나타난다. ▼

 

 

▼ 의룡산은 어느덧 아득히 멀어졌다. ▼

 

 

▼ 로프 구간도 자주 나타난다.

어쨌든 지루할 틈은 없는 구간이다. ▼

 

 

▼ 악견산은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큰 바위들이 무더기로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다. ▼

 

 

▼ 이 지점이 애매하여 오른쪽 아래 등로로 우회하였다. ▼

 

 

▼ 트랭글이 울려 우회한 길에서 결국 되돌아 올라와 보니 이 곳이 정상은 아니다.

빗방울이 굵어지고 왠지 바위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져 자리를 뜨고 말았지만 이 지점이야말로 악견산 최고의 조망터였던 셈이다. ▼

 

 

▼ 묘한 지점에서 악견산 정상석이 나타났다. ▼

 

 

▼ 악견산 정상에서 바라본 합천호 일대. ▼

 

 

▼ 비탈진 바위에서 미끄러지며 살짝 엉덩방아를 찧었다.

오른 손바닥이 얼얼하다. ▼

 

 

▼ 시간은 여유가 넘치지만 세찬 비를 만나게 될까봐 마음이 급하다.

얼른 내려가서 적당한 식당에서 하산식이나 즐겨볼 생각이다. ▼

 

 

▼ 내내 이런 길들을 내려가야 한다.

한번 미끄러지고 나니 급경사 내리막이 더욱 조심스럽다. ▼

 

 

▼ 악견산성 터를 지나간다. ▼

 

- 합천 악견산성(陜川嶽堅山城) :

이 성은 자연 암벽을 이용하여 산꼭대기 부분을 빙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1469년(예종 원년)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에 의하면 이 성은 1439년(세종 21)에 쌓았다고 한다. 또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악견산성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2,008척(약 660m)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후 임진왜란 때인 1594년(선조 27)에 곽재우(郭再祐, 1552~1617) 장군이 성주목사(星州牧使)로 있으면서 도체찰사(都體察使)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지시로 다시 보수하였다고 한다.
성벽은 일부 허물어진 곳도 있으나,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성벽의 높이는 2.7m 정도이고, 산꼭대기의 평탄한 지역에 건물을 세웠던 자리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의 성곽 축성 방식으로 쌓여진 산성으로 이 분야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합천군청 홈페이지 참조)

 

 

 

▼ 합천댐 수문의 모습. ▼

 

 

▼ 부담스러운 내리막이 지루하다.

젖은 길에서 행여 삐끗할까봐 그저 천천히 내려간다. ▼

 

 

▼ 악견산성의 흔적이 다시 나타나고,  ▼

 

 

▼ 묘한 석문 구간을 지난다. ▼

 

 

▼ 합천댐과 창의사의 모습. ▼

 

- 창의사(彰義祠)

창의사는 임진왜란 때의 합천 지역 의병사를 재조명하고, 합천에서 의병을 모아 왜적을 격퇴했던 의병장 정인홍(鄭仁弘 1535~1623)을 비롯한 의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곳으로서 합천군이 사업비 61억 원을 투여해 건립, 2001년 5월 10일 개관하였다.
부지면적은 34,048㎡로,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성리 합천호(陜川湖) 옆의 산비탈을 4단의 층으로 정지하여 터를 마련했다. 사당(창의사)·유물관·강당(경의당)·기념탑·외삼문·내삼문·사주문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입구에서부터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한 사당까지 둘러보려면 모두 4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첫 번째 계단을 오르면 전면에 ‘陜川壬亂倡義記念(합천임란창의기념탑)’이라고 적혀 있는 기념탑이 우뚝 서 있고, 기념탑 하단 세 모서리에는 죽창·괭이·삽·쇠스랑 등을 든 농민의병 조각상이 조성되어 있다. 기념탑 뒤의 두 번째 계단을 올라 숭인문(崇仁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외삼문을 통과하면 왼편으로 사적비 1기와 사주문(천례문)이, 오른편으로 연못과 또 하나의 사주문(양지문)이 있다. 세 번째 계단을 오르면 유물관과 교육공간으로 쓰이는 강당 건물인 경의당이 나온다.
유물관에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투쟁사와 합천의병사에 관련된 갖가지 해설판이 설치되어 있고, 임란 당시의 유물 30여 점도 전시되어 있다. 네 번째 계단을 올라 충의문(忠義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내삼문을 통과하면 의병장 정인홍과 의병120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 창의사(彰義祠)가 있다. 창의사 앞으로는 악견산(嶽堅山, 높이 491m)과 합천호의 풍경이 펼쳐진다.(합천군청 홈페이지 참조)

 

 

▼ 당겨본 창의사 전경.

아래 주차장 가운데에 우리 버스가 보이는데 이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

 

 

▼ 마을로 내려서면 금성산이 다시 솟아 있다.

남은 시간으로 보면 금성산까지 진행해도 충분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

 

 

▼ 여기로 내려왔다. ▼

 

 

▼ 큰길로 걸러가며 되돌아본 금성산.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걸음을 서두른다. ▼

 

- 제법 세찬 비가 쏟아지는데 혼자 먹을만한 식당이 주변에는 없다. 3km 대병면으로 이동하여 식사를 할 생각이었지만 본격적으로 비가 오는 날씨에는 히치하이킹도 불가능하다. 혹시나하여 카카오택시를 불러 봤지만 역시나..

결국 주차장에 있는 버스 주변에서 남은 음식과 소주를 마시며 2시간여를 기다려야 했다. 산행후 식당없는 날머리는 언제나 서운하다. 그래도 산행중에는 우비를 꺼내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장단교에서 모든 회원들을 태우고 출발한 시각이 오후5시 35분, 나는 하산후 2시간반을 허비하였지만 오랜 숙제(?)를 해결한 보람으로 만족스럽게 귀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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