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중의 꿈과 투쟁의 역사를 품어안은 동학의 성지, 전북 남원 교룡산을 둘러보다. 』
■ 산행기록 개요
1. 산 이 름 : 교룡산(蛟龍山, 1,000대명산)
2. 위 치 : 전라북도 남원시
3. 높 이 : 952미터
4. 산행일시 : 2024. 10.4.(금) 13:00 - 14:40 (1시간40분, 순수산행시간 1시간20분)
5. 산행거리 : 3Km
6. 산행코스 : 교룡산장 → 선국사→ 은적암 터 → 교룡산 정상(밀덕봉) → 알바 → 교룡산 정상 → 복덕봉 갈림길 → 선국사 → 교룡산장(원점회귀)
7. 동행자 : 마누라
■ 산행 이동 경로 (GPS 궤적)
■ 전라북도 남원시 교룡산 소개
- 교룡산 자체를 소개하는 공식자료는 찾을 수 없다. 교룡산성 소개자료를 옮겨 대신한다.
- 남원시의 북쪽 산곡동 교룡산에 소재한 교룡산성은 만인의총에서 용정동 방향으로 광주 대구 고속 도로 굴다리를 지나 500m 정도 올라간 지점에 위치한다. 남원 바로 서북쪽의 밀덕봉과 복덕봉 등이 산세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유사시 대피하기 좋은 천혜의 요새지이다.
남원 교룡산성은 본래는 백제 시대에 쌓았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의 성은 조선시대에 축성한 것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남원성곽조」와 『세종실록』 「지리지」, 『문헌비고(文獻備考)』,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기록되어 있다. 1593년(선조 26)에 권율이 승병장 처영에게 명하여 교룡산성을 수축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태종실록』10년조에 남원 교룡산성이 기록되어 있으며, 1704년(숙종 30)에 순찰사 민진원이 산성의 수축을 상계하여 김창석과 박창윤이 일을 담당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성안에는 우물이 99개나 있었다 한다.
현재의 산성은 남원시 서북방의 해발 518m인 교룡산 정상을 중심으로 양쪽 능선을 따라 남원 시가지 쪽으로 이어져 있다. 성의 규모는 둘레 3.1㎞ 정도이며, 내부의 부속 시설로는 군창과 우물이 있다. 산 중턱에 성벽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으며, 동쪽과 접한 곳에는 수구(水口)가 있고 남원교룡산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홍예문이 설치되어 있다. 이 홍예문은 기역(ㄱ)자형의 옹성으로 둘러쌓았으며, 성문 안 바로 북쪽에 남원교룡산성 중수비가 서 있다.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디지털남원문화대전 참조)
- http://www.smgnews.co.kr/179875
■ 전라북도 남원시 교룡산 산행 후기 및 사진 정보
- 거창 감악산 아스타국화축제를 즐기고 교룡산으로 이동하였다. 광주가는 길목에 가볍게 오를 요량으로 선택한 산행지. 평일 한낮의 인적없는 숲속에서 오랜만의 부부산행을 실행에 옮겼다
등산이 싫다는 마나님 눈치를 보느라 쉬운 산을 골랐기에 조금은 싱그운 산행. 그래도 늘 사진으로만 접했던 교룡산과 선국사 일대를 익숙한 느낌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 교룡산은 백제시대 산성이 축조된 천연의 요새로서 주로 이름없는 민중들이 싸우고 피신하였던 역사적 공간으로 기억되는듯 하다. 왜란 당시 의병과 동학혁명 등의 잊혀진 무수한 삶의 주역들이 치열하게 투쟁하며 은신처로 삼았던 역사의 현장은 그저 울창한 숲과 산성의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 선국사 입구 주차장에서 산행 시작. ▼
▼ 처음 왔지만 워낙 사진으로 여러번 봐서인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
▼ 교룡산성 안으로 들어서며 산행이 시작된다. ▼
▼ 교룡산성의 정문(동문)격인 홍예문
홍예문 안쪽으로 동학농민군 김개남군의 주요 인물의 이름들이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
- 남원 교룡산성은 전라좌도 동학농민군 김개남 군의 주둔지이자 방아치 전투의 근거지이다. 전주화약 후 6월 25일 남원성으로 들어간 김개남은 전라좌도 동학 대도회소(大都會所)를 설치하고 폐정개혁을 추진하였다. 이에 맞선 운봉 박봉양의 민보군 규모가 커지자 운봉에서 산동으로 넘어오는 방아치 아래에 있는 부동(釜洞, 부절리)의 동학농민군 1천여 명은 8월 21일 교룡산성을 공격하여 무기를 빼앗았다.
당시 임실 상이암에 있던 김개남은 8월 25일 임실, 태인, 장수, 진산, 금산, 용담, 무주, 진안 등 전라좌도를 비롯한 여러 고을의 농민군 7만여 명과 함께 남원으로 들어왔다. 이들의 규모에 놀란 남원부 내 사족들과 백성들은 모두 도망가고 남원 읍내는 농민군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이때 김개남은 농민군들을 남원성과 교룡산성 두 곳에 주둔시키고 재기포를 준비하였다.
교룡산성 입구에는 2006년 11월 26일 남원시와 〈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 현 위치에 <동학과 동학농민군의 유적지 교룡산> 소공원을 건립하였다. 비 기단부 전면에는 동학 및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사실을, 우측 측면에는 동학의 〈검가〉를 새겨놓았다.(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자료 참조)
https://www.dk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1401
▼ 교룡산장을 지나고, ▼
▼ 돌계단을 오르면, ▼
▼ 금새 선국사가 나타난다
철탑 안테나가 있는 지점이 교룡산 정상(밀덕봉)이다. ▼
- 선국사(善國寺) : 남원시 교룡산성 안에 있는 사찰로 신라 신문왕 5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절 이름에 ‘국(國)’자가 들어가는 사찰들은 대부분 나라를 위해 큰 역할을 담당해왔던 것처럼 선국사도 나라를 지켜낸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호남 지역의 6개 군현에서 거둔 군량미(軍糧米)를 바로 이 교룡산성에 보관했으며, 당시 선국사는 교룡산성을 지키는 수비대의 본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전성기에는 300여 명의 스님이 머물 정도로 큰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교룡산성은 백제시대에 처음 쌓아졌다고 전해진다. 고려 말에는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맞아 싸웠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승장 처영이 수축하여 크게 싸웠던 곳이다. 그리고 동학 혁명 때는 접주 김개남이 이끄는 농민군이 관군과 큰 접전을 벌인 역사적인 유적지이기도 하다.
선국사는 이러한 역사의 현장에서 평상시에는 불법 수행 도량으로서, 전시(戰時)에는 방어 진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역사의 흥망을 함께 해왔다. 1960년 보제루에서 발견된 구리 도장은 조정에서 산성을 지키던 승군(僧軍)에게 내려 보낸 것으로, 교룡산성과 선국사를 나라에서도 중요하게 여겼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현재의 대웅전은 팔작지붕이며 1803년에 지어진 것이다. 경내에는 보제루, 관음전, 칠성각, 산운각,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1995년에는 문영기, 최선화 등이 경내에 석조 미륵불을 세웠다. 1998년에는 절로 올라가는 운치가 있고 아름다운 돌계단이 만들어졌다. 2000년 이후로 비구니 승려 희권이 주지를 맡고 있으며 신도의 대부분은 남원 관내에 사는 노인들이다.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서 ‘인연의 향기’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남원문화대전 참조)
▼ 1803년에 지어졌다는 선국사 대웅전. ▼
▼ 보제루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
▼ 선국사 뒤로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되고. ▼
▼ 우리는 밀덕봉으로 올라 복덕봉 방향에서 내려오게 된다. ▼
▼ 은적암 터로 진행. ▼
▼ 잠시 가파른 길이 이어지고. ▼
▼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머물렀다는 은적암 터가 나타난다. ▼
- 동학이 남원 지역에 처음 포교된 것은 1861년이다. 최제우가 남원의 서공서(徐公瑞) 집과 교룡산성 내에 있던 은적암에 머물면서 동학을 포교하였다. 이때 포교로 남원 지역에서는 한때 수만의 동학 교인이 있었다. 그러나 김개남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운봉과 여원치에서 전투를 치른 이래 동학은 남원 지역에서 점점 쇠퇴하였다.(디지털남원문화대전 참조)
http://www.domin.co.kr/1258091/
▼ 낮아도 산은 산이다.
제법 땀나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
▼ 오랜만에 산행에 따라나선 마누라가 힘겹게 뒤를 따른다. ▼
▼ 고압전류 위험 팻말이 붙어있는 철조망을 우회한다. ▼
▼ 남원 시가지 너머 고리봉,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선명하다. ▼
▼ 당겨본 남원 시내 모습. ▼
▼ 나중에 알았지만 복덕봉을 가려면 이 지점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
▼ 교룡산 정상(밀덕봉) 도착.
주차장에서 45분이 걸렸지만 오늘 마누라 속도를 감안하면 평소에는 3,40분 이내면 충분할 것이다. ▼
▼ 능선길의 흔적이 뚜렷하여 아무 생각없이 나아간다.
당연히 복덕봉으로 이어지는 길이겠거니... ▼
▼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몇 년 전 집사람과 혼불문학관까지 길게 걸었던 풍악산이 손에 잡힐듯 하다. ▼
▼ 당겨본 골프장(골프존카운티 드래곤). ▼
▼ 건너편에 보여야 할 봉우리(복덕봉)가 보이지 않아 확인해보니 지도에는 아예 표시되지 않은 길을 걷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알바를 하게 된 것이다. ▼
▼ 그리하여 기껏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간다. ▼
▼ 정상으로 돌아와서 확인한 복덕봉의 모습. ▼
▼ 당겨본 승사교와 춘향테마파크 일대. ▼
▼ 갈림길 표지로 돌아와 선국사로 향한다.
엉뚱한 알바로 10여분을 날렸지만 덕분에 풍악산 방향 골프장 조망 하나는 건진 셈이다. ▼
▼ 무덤들이 몇 개 나타나고. ▼
▼ 안부에서 잠시 고민한다.
평소라면 당연히 복덕봉을 올라야 하는 것인데... ▼
▼ 마나님의 의견을 여쭈었더니 답은 정해져 있었다.
선국사로 짧게 내려간다. ▼
▼ 오늘 교룡산의 숲속은 뭔가 음습한 기운이 넘친다.
평소 등산객도 많지 않은지 거미줄이 자주 얼굴에 휘감겼었다. ▼
▼ 풀밭이 나오면 뱀 밟을까 새가슴이 되고. ▼
▼ 선국사가 나타나니 긴장이 풀린다. ▼
▼ 커다란 바위들이 무언가 했더니 옛적 건물터의 잔해였다. ▼
▼ 교룡산장을 다시 지나면서, ▼
▼ 교룡산성의 수구(水口)를 눈으로 확인하였다. ▼
▼ 성 밖에서 본 수구. ▼
▼ 산행 내내 사람은 털끝 하나도 구경하지 못했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 광주 숙소로 이동하여 늦은 점심겸 저녁 뒷풀이로 일찍 하루를 마감하였다. ▼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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