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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000대명산

경남 합천 금성산(592m) 거대바위로 이루어진 봉화대의 조망 명산(2023.3.4)

by 日新우일신 202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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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벽으로 이루어진 정상의 봉화대에서 합천호를 바라보다.

■ 산행기록 개요

1. 산 이 름 : 금성산(金城山, 전국1,000대 명산)
2. 위 치 : 경상남도 합천군
3. 높 이 : 592미터
4. 산행일시 : 2023. 3. 4.(토) 11:15-16:10 (4시간55분, 순수산행시간 4시간)
5. 산행거리 : 8.5Km
6. 산행코스 : 대원사 → 전망바위 → 금성산 정상(석) → 금성산 봉수대 → 장단교회 → 삼산초등학교(옛터)  → 청강사 → 성터 → 허굴산 정상 → 용바위 → 장군바위 → 장단교 → 쌍암마을
7. 동행자 : 엠티산악회 28명 (나홀로)

 

■ 산행 이동 경로 (GPS 궤적)

 

■ 경상남도 합천군 금성산 소개

- 합천군 대병면에 위치한 금성산은 대병면 소재지에서 정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모산은 황매산(黃梅山ㆍ1,113m)이다. 금성은 무쇠 성[金城]` 이란 말로 옛 고려시대부터 통신수단의 하나인 봉화대(烽火臺)가 정상에 자리하고 있어서 일명 봉화산(烽火山)이라고도 한다.
어떤 기록에는 동남쪽의 허굴산(墟堀山ㆍ681.8m)과 중간의 금성산(金城山ㆍ592.1m), 북쪽의 악견산(岳堅山ㆍ620m)을 합쳐 삼산(三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금성산 정상에 자리한 봉화대는 자연 암반 주위에 돌을 쌓고 불구덩이[煙臺]와 건물을 조성하였는데, 불구덩이는 현재 1m 정도만 남아 있다. 주위에 건물을 지었던 터가 있는데, 그 터 안에는 봉화대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자연 암반에 새겨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봉화대는 조선 정조 2년(1778년) 조성하였다고 한다.

금성산 정상 서쪽 벼랑에는 수백 척이나 되는 암벽이 있고, 중간에 넓은 반석으로 널따랗게 펼쳐져 있어 이를 가리켜 금반현화(錦盤懸花ㆍ비단 소반에 꽃을 단 것)란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합천군청 자료 참조)

 

https://www.kookje.co.kr/mobile/view.asp?gbn=v&code=2200&key=20200116.22015002981 

 

근교산&그너머 <1160> 경남 합천 금성산

- 약 4.7㎞ 거리 원점회귀 코스 - 초반길 급경사 심해 주의 필요 - 설악산 울산바위 같은 정상 서면 - 서쪽엔 황매산, 북쪽으론 재인산 - 동쪽..

www.kookje.co.kr

 

■ 경남 합천군 금성산 산행 후기 및 사진 정보

- 금성산, 허굴산은 내 산행 리스트에는 없던 곳이다. 소위 합천 대병4악으로 불리는 두 개 산을 알고는 있었지만 얼마 전 의룡산, 악견산을 이어 걸으며 새삼 호기심이 동하였다.

그리하여 오늘은 대병4악의 나머지, 금성산과 허굴산을 이어걷게 되었다. 여유로운 발걸음에 시간도 충분하여 하산후 대병면 식당에서 홀로 뒷풀이까지 즐긴 행복한 遊山의 하루가 되었다.

 

 

▼ 대원사 입구에서 산행 시작. ▼

 

 

▼ 대원사의 모습. ▼

 

 

▼ 대원사에서 바라본 악견산의 모습.

오늘 산행의 한 가지 흠이라면 미세먼지의 습격으로 온세상이 부옇다는 것이다. ▼

 

 

▼ 오늘 금성산, 허굴산 코스를 선택한 사람은 나까지 포함하여 모두 4명이다. ▼

 

 

▼ 계속해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니 땀이 줄줄 흐른다. ▼

 

 

▼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온통 바위 구간으로 바뀌고 있다. ▼

 

 

▼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합천호 파노라마 전경.

조망이 탁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

 

 

▼ 곳곳에 조망터가 있지만 보이는 것이 없어서 사진을 찍을 것도 없다. ▼

 

 

▼ 금성산 정상은 커다란 암봉이다.

정상석은 바위 아래 있고 실제 정상인 봉수대 터는 바위 위로 올라가야 한다. ▼

 

 

▼ 봉수대에서 바라본 악견산. ▼

- 봉수(烽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燧]로, 밤에는 횃불[烽]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봉수제는 기록상으로 고려 중기(12. 3세기)에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진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들어서였다.

봉수를 밝히는 봉수대는 대략 수십 리의 일정한 거리 간격으로 시야가 확 트인 산꼭대기에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평시에는 하나의 불꽃이나 연기[一炬 또는 一煙], 바다에 적이 나타나면 둘,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셋, 바다에서 접전이 이루어지면 넷,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개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
이 봉수대는 일명 봉화산이라 불리는 금성산 정상부에 축조된 것으로, 자연 암반 주위에 돌을 쌓아 불구덩이[煙臺]와 건물을 조성하였다. 불구덩이는 현재 1m 정도만 남아 있고, 주위에 건물을 지었던 터가 있다. 건물을 지었던 터 안에는 봉수대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자연 암반에 새겨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봉수대는 1778년(정조 2)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이 봉수대는 남쪽의 입암산(笠岩山)으로부터 봉화를 받아 북쪽의 소현(所峴) 봉수대에 연결하는 통로였다고 한다.(국가문화유산포털 참조)

 

 

 

 

▼ 실제 정상의 모습. ▼

 

 

▼ 장단리를 향해 내려간다.

금성산은 주욱 올라와서 주욱 내려가는 산이다. ▼

 

 

▼ 정상부는 이렇게 거대한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

 

 

▼ 허굴산이 훤히 보이는 전망바위에서 홀로 점심을 먹는다. ▼

 

 

▼ 장단리 내려가는 구간에도 거대한 바위들이 절벽을 이루고 있다. ▼

 

 

▼ 가파른 길을 내려와서 무덤이 나타나면 산길은 모두 끝이 난다. ▼

 

 

▼ 무덤 옆 주차공간에서 올려다본 금성산 정상부. ▼

 

 

▼ 포장도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서며 바라본 허굴산. ▼

 

 

▼ 장단리 큰 길가에는 매화꽃이 만발하였다. ▼

 

 

▼ 장단리에서 돌아본 금성산. ▼

 

 

▼ 이제 청강사를 향해 왼쪽 마을길로 향한다. ▼

- 금성산 산행기는 여기까지. 편의상 허굴산 산행기는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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