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 이 름 : 계명산 (鷄鳴山, 300대명산/숨겨진우리산 283번째)
2. 위 치 : 충청북도 충주시
3. 높 이 : 775미터
4. 산행일시 : 2020. 11. 15(일) 14:50-17:35 (2시간45분, 순수산행시간 2시간20분)
5. 산행거리 : 5.3Km
6. 산행코스 : 마즈막재 → 자연휴양림 갈림길 → 709봉 → 계명산 정상 → 709봉 → 마즈막재 (원점회귀)
7. 동행자 : 나홀로
- 막내딸 시험 일정이 하필 일요일 오후로 변경되었다. 계명산은 인등산과 묶어 하루에 해치울 요량으로 아껴둔 곳이었으니 원래대로라면 어제 왔어야 했던 곳이다. 생각지 못한 변화로 일정 계획이 묘하게 꼬인 것이다.
어쨌든 일요일 산행은 마뜩치 않다. 게다가 전날 대룡산 산행 이후 과음한 여파도 남아 있어서 그저 천천히 진행하기로 한다. 그러나 예상보다 빨리 어두워지는 숲길을 걸으며 잠시 마음이 급해지기도 하였다.
- 계명산은 충북 충주시 안림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는 774m로 충주시내 동북편에 위치한 산으로 산세도 절경이지만 산위에 올라 충주호를 굽어 보는 경관이 아름다운 산이다. 마즈막재를 가운데 두고 동북쪽에 계명산이, 남동쪽에는 남산(636m)이 충주시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그 운치를 더 해주며 시내에서 가깝기 때문에 시민들로 부터 사랑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토질이 비옥하고 일조환경이 좋아 이 산기슭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품질로 인정을 받고 있다. (충주시청 홈페이지 참조)
- 계명산은 삼국시대에 심항산으로 불렸다. 이후 산의 형세가 닭의 발가락 모양을 하고 있어 계족산이라고 불렸다. 그러다 충주의 진산(鎭山)이 ‘닭의 발가락 형상을 하고 있어 충주에 부자가 나지 않는다’고 하여 산의 명칭을 바꾸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닭은 먹이를 먹을 때 모이를 흩뜨려 먹어 충주 고을의 재산이 밖으로 나가게 되어 충주에 부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59년에 김상현(당시 군수)이 집필하고 중원군청에서 발행한 『예성춘추(蘂城春秋)』에 따르면 1958년 충주 지역 인사들의 의견과 충주시 의회를 거쳐 ‘닭의 울음이 여명을 알린다’는 뜻을 가진 계명산으로 개칭하여, 충주 고을의 희망을 담았다고 한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참조)
계명산의 이름은 이와 같이 양택 풍수전설의 일종인 현대판 비보풍수(裨補風水)에 의해 개명(改名)된 것이다.
- 계명산의 자료를 살피다 보니 결국 모든 스토리텔링이 충주의 역사와 완벽하게 얽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충주의 진산(鎭山)인 것이다.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에 의하면 충주는 경상 좌도와 우도로 가는 사람들이 길을 달리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좌도로 가는 사람은 충주에서 죽령을 넘고, 우도로 가는 사람은 조령을 넘는다.
충주는 나라의 중앙에 있어 서로 차지하려고 쟁패하던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이규경은 충주가 오히려 살기 좋은 지역이 아니라 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때문에 항상 살기가 충천하고 태양이 빛을 발할 수 없다. 지세가 서북으로 달려가는 형상이며, 그 기운이 쌓이고 머물 여유가 없다. 그래서 예부터 부유하고 후덕한 사람이 적다. 백성들은 그 숫자가 많아 항상 구설수에 오를 수 있으니 가히 오래 살 만한 곳이 못 된다(而常時殺氣衝天 白日無光 地勢走瀉西北 無停蓄之氣 故亦少富厚者 人民稠衆 常多口舌浮薄 不可久居之地).”
- 산의 이름을 현대에 이르러 풍수설에 따라 개명하였을 정도로 계명산은 지역 주민의 한(恨)과 소망을 모두 품어 안고 있는 충주의 역사적, 상징적 공간으로서 매우 중요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계명산을 오르면 충주가 보인다.
▼ 마즈막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
↑↑↑ ※ 충주의 계명산과 남산이 연결되는 지점에 고개가 하나 있는데 이 고개를 일러 ‘마지막재’라고 한다. 옛날 한양에서 배를 타고 충주시 종민동 나루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개 충주 포도청으로 가든가 아니면 사형장으로 가게 되므로, ‘가기만 하면 살아오지 못한다’는 관례에 따라 마지막으로 넘는 고개라는 뜻에서 ‘마지막재’라고 했다고 한다. 다른 한 설에는 “옛날 이 부근에 호랑이가 많아 충주 성안 사람들이 그 고개를 넘어 가기만 하면 살아오지 못했다”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라고도 한다.
포도청으로 가든, 사형장으로 가든, 호랑이에게 물려가든, 어쨌든 이 고개를 넘으면 살아오지 못한다는, 즉 살아 있을 때에 마지막으로 넘는 고개라는 의미에서 ‘마지막재’가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참조)
▼ 마즈막재에서 계단 몇 개를 오르면 대몽항쟁 전승기념탑이 나타난다.
고려의 역사에서도 충주의 의미가 매우 컸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
↑↑↑ ※ 충주민은 1231년(고종 18) 12월 몽고군 침략으로부터 1258년(고종 45) 10월 박달현 전투까지 약 27년 동안 9차례의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어 충주를 대몽항쟁의 최대 승전지로 만들었다. 특히 충주에서는 백정·천민·노비들이 주체가 되어 몽고군과 용감하게 싸웠는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충주 지역이 삼국시대 이래 그 어느 지역보다 시련이 많았던 지역임을 감안하면, 충주민의 자생적 지역 보위의 정신이 승화된 주인의식과 애국심의 발로일 것이다. 고려시대 충주민의 대몽항쟁의 전승을 기념하고 그 호국정신을 이어받기 위하여 2003년 9월 24일 대몽항쟁전승기념탑이 충주시 안림동 마즈막재에 세워졌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참조)
▼ 기념탑을 지나면 곧바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
▼ 알고 있던 바와 같이 닥치고 오르막이다. ▼
▼ 부쩍 포근해진 날씨에 땀이 줄줄 흐른다. ▼
▼ 잔뜩 땀을 흘린 후 겨우 능선 위로 올라서니 왼쪽으로 나무계단이 보인다. ▼
▼ 충주호 방면은 뿌옇기만 하고.
오늘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어서 조망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다.
사실 계명산은 충주호 풍경이라도 보려고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는 계절을 기다리고 있었다. ▼
▼ 대충 세어보니 계단이 200개 가량 된다.
고달픈 낙엽길 오르막에서 만난 대단히 고마운 시설물이다. ▼
▼ 처음으로 잠깐의 평탄한 길이 나타나고. ▼
▼ 곧바로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
▼ 저 둘중에 하나가 정상인가, 잠시 어이없는 착각을 하였다.
계명산을 너무 만만히 본 탓인데 사실 정상은 아직 까마득하게 멀다. ▼
▼ 앞에 가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서 자세히 보니 비박을 목적으로 한 두 명의 젊은 친구들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끙끙거리는 모습에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
▼ 계명산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 지점을 제1전망대라고 부르고 있다. ▼
▼ 전망대 시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충주호가 보이긴 한다.
시계(視界)가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날씨여서 모든 것이 흐릿할 뿐이다. ▼
▼ 계속되는 오르막에 지쳐 갈 즈음 나무벤치가 있는 언덕에 올라선다.
몇번씩 쉬어가며 일부러 천천히 뒤따라 왔건만, 헐떡거리며 쉬고 있는 비박족(?) 두 사람을 추월해서 걸어간다. 저들도 초행길인지 정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좌절하고 있다. ▼
▼ 아무리 봐도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정상인가보다.
정상까지 거리가 이렇게나 먼 줄은 몰랐으니 잠시 당황스럽다. ▼
▼ 여기부터의 800미터 구간은 오르내림이 반복되어 은근히 사람을 지치게 한다.
오늘같은 원점산행은 차량회수 문제로 불가피한 것이지만 보통은 손쉬운 산행을 위한 것이기도 한데 마즈막재 원점회귀 산행은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코스였던 것이다. ▼
▼ 힘겹게 봉우리를 넘고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워낙 만만하게 여긴 탓에 더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
▼ 이번에는 설마 마지막이겠지?.. ▼
▼ 드디어 정상 옆 헬기장에 도착했다.
아는 이들에게는 비박 장소로 활용되는 장소인 모양이다.
산행 시작후 1시간20분이 넘게 걸렸다. 평소라면 특별히 멀거나 힘든 구간도 아니지만 워낙 쉽게 여겼던 탓에 꽤나 멀게 느껴졌다. ▼
▼ 정상석 2개에 표시된 높이가 다르다?!. ▼
▼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바라만 보고. ▼
▼ 지나온 방향. 왼쪽이 헬기장이다. ▼
▼ 정상에서의 조망은 대부분 막혀있다. ▼
▼ 그러나 헬기장에서는 충주호 쪽으로 탁 트인 조망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날씨가 이 모양이니 원... ▼
▼ 정상에사 15분간 홀로 머물다가 서둘러 내려서기 시작한다.
헬기장에서 내려서는 길에서 비박 청년들과 마주친다.
정상 몇 걸음 앞에서 간절한(?) 눈빛으로 정상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보는 그들을 보며 소리내서 웃고 말았다.
이제부터 고생 끝, 행복 시작인 그들의 즐거운 캠핑을 빌어 주었다. ▼
▼ 왔던 길 되돌아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제법 가파른 봉우리 몇 개를 넘어야 하는 것이다. ▼
▼ 부지런히 800미터를 걸었지만 꼬박 20분이 걸렸다. ▼
▼ 저 앞 나무의자가 있는 언덕을 지나고 나면 내리막길만 남은 셈이다.
오른쪽으로 석양이 기울고 있다. ▼
▼ 휴양림 갈림길, 제1전망대를 지난다. ▼
▼ 해는 서산으로 지고 충주호는 어둠을 준비하고 있다. ▼
▼ 숲속에는 빠르게 어둠이 깔리고 있다.
낙엽길이 상당히 미끄러워서 완전히 캄캄해지면 대략 낭패일 것이다. ▼
▼ 주차장에 도착한 직후 완전한 밤이 시작되었다.
어둠이 무서워서 서둘렀더니 정상으로부터 정확히 1시간이 걸렸다.
막내딸을 태우고 돌아오는 길이 엄청 막힌다. 일요일 늦은 밤의 고속도로 운전은 아예 기억에도 없을 정도로 오랜만이다. 140여km 이동하는데 3시간반이 넘게 걸렸으니... 고속도로의 흐름을 깨는 엉터리 운전자들이 너무 늘어서 갈수록 운전하는 일이 힘들고 지겨워진다.
늦은 저녁식사와 홀로 뒷풀이(?)를 마치고 월요일 일어날 일을 걱정하며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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