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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정보 자료실

[펌] [서평] 심경호가 쓴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 <산문기행>

by 日新우일신 2010.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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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틈만 나면 등산을 즐겨 하게 된 나는 요즘 부쩍 등산 관련 서적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산에 대해, 등반에 대해 전혀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내가 등산에 취미를 붙이고 즐겨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옆 짝지의 덕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막연하게 산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많았지만 홀로 산행하는 용기가 없어 별로 해 보지 못했던 산행, 동행이 있어 즐겁고, 또 동행이 있으니 등산할 기회가 많아 좋다.

 

자연히 산 이야기가 많고 우리 강산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산에 대한 정보를 알려고 하는 관심이 커지다 보니 산 관련 서적을 자주 찾게 된다.

 

그 와중에 산에 관련된 정보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정보들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록물로 남긴 것을 보게 된다.

 

그 가운데 만난 책 중의 하나가 오늘 만난 책, '조선의 선비, 산길을 가다'라는 부제가 붙은 심경호의 <산문기행>이다. 우선 이 책의 무게와 적지 않은 두께가 읽기도 전에 부담감으로 압박(?)해왔지만, 막상 펼쳐보면 흥미롭다.

 

선조들의 기록이 있었기에

 

나는 저자가 기록한 순서대로 읽지 않고 우선 내가 한 번 이상은 가 본 산부터 읽어 나갔다.

 

조선 중기 문인 임제가 쓴 기행수필 <남명소승>에는 그가 한라산 등반한 기록이 담겨 있다. 제주도 한라산 최초로 등반한 임제는 그가 28세 되던 해(1577년) 문과에 급제한 후 당시 제주목사인 부친 임제에게 과거 합격인사를 올리려고 그해 11월 3일 고향을 출발하여 12월 9일 제주 조천관에 도착하기까지 37일간의 여정, 12월 10일부터 이듬해 2월 16일까지의 제주기행, 그리고 2월 그믐 제주를 떠나서 3월 5일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6일간의 여정 등, 4개월 동안의 노정을 기록한 책이다.

 

최익현(1875년)은 대원군을 탄핵하여 제주도와 흑산도 유배된 뒤 사면되자마자 한라산 등정을 했고, 최초로 비박노숙한 것은 역시나 흥미롭다. 김상헌은 선조의 특사 자격으로 제주를 방문하고 한라산을 등반했고, 부친이 벼슬을 박탈당하자 벼슬에 일평생 나아가지 않았던 조식은 지리산을 무려 열일곱 번이나 유람했다. 선조들이 지리산 천왕봉까지는 올랐어도 종주를 할 수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엄청난 인력과 식량, 막대한 장비, 그리고 호랑이 같은 짐승들 때문이다. 또 주능선에 사찰이나 암자 등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봄에 꽃피고 가을에 낙엽이 질 때마다 내 마음 그곳(두류산)에 가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왜 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 산이 바다를 삼킬 듯이 웅장하고 천지간에 우뚝 서 있어서 신선들과 고승들이 모여 살기 때문이리라"고 했던 양대박은 지리산 천왕봉을 두 번이나 등반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심경호는 조선 선비들이 기록한 유산록 원문과 함께 그들의 산문의 맛과 멋을 한껏 살린 그의 충실한 번역 뿐 아니라, 자세한 해설을 겸하고 있어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다. 또한 각 산문에 어울리는 뛰어난 산수화와 지도 70여 점을 선별하여 컬러로 실음으로써 원문의 감동과 깊이를 더하고 있으며, 선인들의 글맛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민족의 성산, 북부의 산, 남부의 산, 그리운 산 등 제5부로 나뉘고 있으며 민족의 성산에서는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금강산의 4대 명산을 소재로 하여 홍세태, 서명응, 임제, 최익현, 김종지그 조식, 양대박, 이곡, 남효온, 이원, 홍인우, 유몽인, 김금원 등 13명이 남긴 글을 선별해 수록하였다. 북부의 산에서는 칠보산, 묘향산, 천마산, 송악산 등을 소재로, 임형수, 조호익, 박제가, 이광려, 조찬한, 이정구 등이 남긴 글을 선별해 수록하였다.

 

중부의 산에는 설악산, 화악산, 두타산, 오대산, 치악산, 태백산, 북한산, 서산, 백운산, 수종사, 감악산, 관악산, 운악, 계양산, 마리산, 속리산, 계룡산 등을 소재로 하여 정범조, 홍태유, 김수증, 김효원, 김창흡, 안석경, 이인상, 허균, 이덕무, 김상헌, 허목, 정약용, 채제공, 성대중, 김윤식, 이규보, 홍석모, 이동향, 송상기, 이산해, 이경전, 이철환 등의 글을 선별해 수록하고 있다. 남부의 산에는 월출산, 금골산, 소백산, 청량산, 가야산, 덕유산, 주왕산 등을 소재로, 김창협, 고경명, 이주, 이황, 주세붕, 저이한, 정구, 임훈, 허훈, 장현광 등의 글을 발췌 수록하고 있다.

 

그리운 산에는 김만중, 강세황의 글을 선별해 수록하고 있으며, 부록으로 '선인들의 우아한 산행'에서 선인들의 산행 준비와 방식, 비상식량 등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 것 등이 독자들을 흥미롭게 한다. 선인들의 유산록을 읽으면 그 시대에 어떤 눈으로 선조들이 유람하였는지, 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단순한 산행자체의 기록물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정신의 흐름과 철학 등이 배여 나온다. 그들의 여행 중에 경험했던 정신의 궤적이 담긴 글이라 하겠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기록의 중요성, 바로 문서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절감했다는 점이다. 옛 선조들이 산행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무엇으로 알 수 있었겠는가. 옛 선조들이 기록으로 남겼기에 오늘날의 사람들이 그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그들이 어떤 산으로 여행했으며 또 어떤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았고, 그들의 삶의 철학이 묻어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산행의 의미와 그 궤적들을 더듬어 보고 참고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본문에서 '백두산'에 대한 글에서 홍세태가 쓴 <백두산기>는 백두산에 대한 기록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만 보아도 기록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선인들은 다른 사람이 남긴 유산록을 읽으면서 미리 여행 일정을 잡고, 유람 길에 유산록을 가지고 가서 자신의 경험과 비교해보기도 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산, 산이란 무엇인가?

 

'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저자는 머리말 서두에 이렇게 화두를 던진다.

 

산이란 내게 무엇이며 당신에게 무엇인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다. 등산인구는 매년 증가추세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건강상의 이유로, 또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등 많은 이유와 명목을 갖고 산을 찾는다.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며 산에 오르는 것일까. 선조들의 유산기를 통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지혜를 발견하는 기쁨을 갖는다면 좋을 것 같다.

 

산의 의미는 점점 많이 변해왔음을 알 수 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상고시대의 산악은 유람의 장소가 아니라 하늘과 인간이 교통하는 곳"이었고, 산을 신성시하였고 숭배의 대상이었다면, 고려 중엽 이후로 산놀이에서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즐기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산은 '호탕한 놀이'로 정착, 선인들은 산을 유람하였고, 조선 중기에 이르러 '경관을 구경하고 유흥을 즐겨 가슴 속의 티끌을 죄다 씻고자' 하였다.

 

산놀이를 유흥으로 여기되, '산에 올라가서는 세상에 대한 욕심인 기심을 잊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세상에 나가 도를 펴지 못하고 고향에 머물면서 수석의 사이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확고하여 뽑히지 않는 자'의 중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가 되어, 산행은 또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등산은 현대인의 것(?)인줄만 알았으나, 내가 태어나기도 전, 부모님 세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보다 더 오래 전부터 우리 옛 선조들이 등산을 하였다는 것, 그 산놀이를 또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느낀 감흥과 머릿속에 떠오른 착상을 산문으로 적어 유산록으로 엮었고, 다른 사람이 기록한 유산록을 읽고, 또 그런 책을 소매 속에 품고 산행하며 참고로 하였다니 놀랍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등산방식은 어떠했을까?

 

선인들의 산수 유람은 대부분 나 홀로 유람이나 등산이 아니라, 자기가 거느린 종을 비롯해 일행들과 함께 올랐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요즘처럼 두 발로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노새와 나귀, 말을 타고 길을 가기도 했으며 산 밑에서는 가마꾼의 도움을 받아서 올라간 기록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가마를 타고 올라갈 땐 젊은 승려들의 도움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승려들이 메는 가마를 담여, 혹은 견여라고 하는데 이인상이 <태백산 유람기>를 보면 두 대의 견여를 메기 위해 무려 90명의 승려들을 차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승려들이 대부분 견여를 멘 것은 사대부들의 도움으로 세금과 부역을 감해 받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승려들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금강산 만폭동에는 '가마꾼 중과 악독한 관리'의 전설이 있을 정도라 한다.

 

한라산을 등반한 최익현은 선비 이기남의 인도로 길을 나섰는데, 일행은 어른 10여 명, 종자 5, 6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주세붕은 청량산에 오를 때 인근 현감과 속관, 재지사족들과 함께 늙은 기생. 피리쟁이. 노래하는 어린 재인. 거문고 타는 여종. 아쟁 켜는 어린 여종까지 이끌고 갔다고 한다. 하지만 방랑자 김시습이나 가난한 선비들의 경우는 또 달라서 겨우 자기의 종자만 데리고 가거나 혼자 걸어 올라갔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심경호의 <산문기행>은 서른다섯 곳의 명산에 대해 쉰다섯 분의 선인들이 남긴 유산록의 중요 부분을 발췌기록하고 해설하고, 선인들의 산놀이 풍속을 독자들이 쉽게 알 수 있게 했다. 아울러 산수화와 지도 등을 함께 엮어 생동감을 살렸으며, 선인들의 산행방식과 옷차림, 준비물 등까지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옛 선조들의 생활방식이나 삶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맹자는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로부터 시작한다"라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깨우쳤다고 했던가. 산행도 낮은 곳에서 한 걸음씩 올라가는 것이고, 우리 인생의 모든 일들이 그렇지 않겠는가. 선조들이 발로 쓴 유산기를 한데 모아 펴낸 <산문기행>을 통해 옛 선조들의 정신과 삶을 들여다보고 선조들의 발이 닿았던 산에 한 걸음씩 올라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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