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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

20년 물생활과 새코미꾸리 이야기

by 日新우일신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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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했던 물생활을 다시 시작하며 고아(高雅)했던 생물 새코미꾸리를 추억하다 』

 

(이 글은 2017년에 작성해서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내용입니다.)


- 집에서 수족관을 설치하고 관상어 등을 키우는 활동을 흔히 '물생활'이라고 한다. 집에 어항 한번 설치하지 않은 사람들이야 없겠지만 물생활한다고 하면 수질 관리 등 나름의 지식과 노하우를 가진, 준전문가 이상의 사람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내가 물생활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대 초반이 되던 80년대였다. 동네 수족관에서 대충 주워 들은 설명으로 한 자 반짜리 유리 어항에 열대어를 키웠었다. 지금의 인터넷과 같이 지식을 공유할 수 없는 채널이 없었기에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엉터리였다.


물을 깨끗이 한답시고 사흘이 멀다하고 수족관을 박박 씻어서 모든 환경을 청결히 하였음에도 아침이면 둥둥 뜨던 물고기 사체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다시 물고기를 사다 넣는 것도 지쳐서 결국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어설픈 최초의 물생활(?)을 사실상 접고 말았던 것이다.
(자꾸 죽는 물고기는 포기하고 손톱만한 거북이 2마리를 10년 가까이 키워서 수박만 하게 만들었으니 이 또한 물생활이라면 물생활이다. 다만 애지중지 키웠던 내 거북이들이 환경파괴종으로 지정된 붉은귀거북임을 알고는 망연자실... 인천대공원 연못에 내다버릴 풀어 줄 수 밖에 없었던 허무한 기억도 있다.)

- 오랜 시간이 흘러 결혼이란 걸 하게 되면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의 좋은 경험과 추억을 남겨 주고 싶다는 바램이 생겼으니 그중 한 가지가 집에 수족관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열대어 키우는 일은 된통 당한 경험이 있어 선택한 것이 자연 상태의 민물고기들이었다.
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을 통한 지식의 공유가 가능했으므로 이번에는 공부도 충분히 하였다. 오랜 기간의 연구(?)와 동호인 사이트의 정보를 취합하여 4자 짜리 스텐 수족관을 베란다에 설치하게 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저수지와 강화, 김포의 수로를 온가족이 다니며 참붕어, 붕어, 잉어, 징거미새우 등을 잡히는 대로 수족관에 넣었다.

- 물생활에 대한 관심과 꾸준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불과 몇 달 만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으니 바로 계곡에 사는 물고기들을 키우는 일이었다. 어릴 적 수락산 계곡에서 잡아 온 버들치들이 다음날 아침이면 모두 죽어 있곤 해서 무척 실망했었다. 그 당시 어른들도 맑은 계곡물에서 사는 민물고기들은 집에서는 못 키우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 오랜 동안 원래 그런 것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 전국의 자연휴양림을 다닐 때마다 민물고기들을 잡아 오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내 차에는 항상 어항과 족대, 잡은 물고기를 살려 올 큰 물통과 기포기까지, 탐어를 위한 완벽한 장비가 갖춰지게 되었다. 지금은 거실에 있는 4자 수족관 하나가 전부이지만 세상의 모든 물고기들을 집에서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던 때에는 10개여개의 수족관을 설치하여 온 집안을 수 백여종, 수 만 마리의 생물이 사는 물의 나라로 바꾸는 바람에 마누라에게 구박을 받곤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10년을 훌쩍 넘게 이어 온 물생활이었는데.........

- 지금은... 물생활에 대한 모든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만사가 귀찮아진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새코미꾸리가 죽었기 때문이다.

- 10여년 전, 아이들과 여름 피서지로 찾았던 평창 흥정계곡에서 잡아 온 새코미꾸리는 막내딸과 비슷한 나이의 우리집 수족관 최고참이었다. 흥정계곡에서 함께 잡혀 온 10여종의 민물고기는 물론, 전국의 계곡과 강에서 살던 쉬리, 버들치, 동자개, 참갈겨니, 금강모치, 대륙종개, 참종개, 각시붕어 등등 수많은 동료들이 모두 늙어서 죽어 가는 동안에도 늘 건강했던 놈이다.
토종 민물고기 뿐인가. 지구 반대편의 탕카니카호수에 살던 놈들을 비롯하여, 자연 생태계에서에서는 꿈에서도 만날 수 없는 수많은 열대어들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지켜 왔던 녀석이다.

- 그런 새코미꾸리가 얼마 전 죽고 말았다. 대부분의 민물고기 수명이 1,2년에 불과하므로 물생활중 고기가 죽는 것은 매우 자주 겪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왠지 모를 서글픔과 스스로 자책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새코미꾸리의 죽음의 원인이 조금은 어이없었거니와 알면서 조치를 미뤘던 내 잘못이 컸던 것이다.

 

- 문제의 발단은 마누라가 얻어온 수마트라 10여마리였다. 수마트라가 본래 공격성이 강하여 여러 종류 물고기와 합사하기 부적합한 열대어인 것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방심한 것이 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수마트라들이 새코미꾸리의 꼬리 지느러미를 쪼는 모습을 발견하였던 것인데...

마침 회사문을 닫고 머릿속이 복잡하여 그 많던 수족관을 모두 정리한 터라 마땅한 격리 방법을 찾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수조 위에 둥둥 뜬 새코미꾸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새코미꾸리의 죽음이 발견된 그 밤, 나는 분기탱천하여 수마트라 10여마리를 즉각 처단해 버렸다.

 

※ 두산백과는 수마트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몸에 있는 줄무늬 때문에 타이거 바브(tiger barb)라고도 불린다. 몸길이는 자연상태에서 7∼10cm, 인공적으로 기를 때는 4∼5cm이다. 암컷이 수컷보다 크며 몸나비도 넓다. 몸빛깔은 노란색 바탕에 4개의 희고 넓은 줄무늬가 몸 옆에 세로로 나 있다.
맑고 깨끗한 물에 무리지어 사는데 활동성이 매우 강하다. 또 둔한 물고기의 수염을 쪼거나 꼬리지느러미를 물어뜯는 버릇이 있어 에인절피시나 구라미와 같은 긴 수염의 물고기와 함께 기르는 것은 피하도록 한다. 이러한 버릇은 여러 마리가 무리를 지었을 때보다 한두 마리일 경우가 더 심하다. (후략)......
[네이버 지식백과] 수마트라 [Sumatra]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 생전의 새코미꾸리의 모습.

이미 열 살이 훌쩍 넘은 나이였다.

수마트라의 반복된 공격으로 꼬리 지느러미가 닳아있는 모습이다. ▼

 

- 나는 새코미꾸리를 참으로 좋아했었다. 수백 여종의 열대어와 토종 민물고기들을 키워 봤지만 새코미꾸리처럼 스스로 절제하고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는 생물은 보지 못하였다. 야생에서 잡아온 대부분의 민물고기들이 먹이에 대한 탐욕으로 금새 살이 쪄서 죽어간 것과 달리 새코미꾸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닥에 떨어진 소량의 사료만을 먹어서 늘 일정한 크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같은 공간의 어떤 생물에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고 늘 바닥에서만 살다가도 가끔 흥이 나면 130cm 수조를 멋지게 활강하는 모습을 10년 넘게 지켜보면서 나는 새코미꾸리의 고매한 삶의 방식에 늘 감탄했었다.

본래 1급수 맑은물에 살던 그 고고한 기품과 우아한 자태는 형용하기 힘든 매력으로 그의 삶을 돋보이게 하였으니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홀로 장수했던 가히 군자(君子)와 같은 생물이었던 것이다. 

 

 

(이상은 2017년에 작성해서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글과 사진입니다.)

 

- 새코미꾸리와 이별한지 5,6년 지난 지금, 2022년 9월에도 새삼 만감이 교차하여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오랜 세월 방치했던 4자 수족관을 정비하여 물생활은 다시 시작했지만 나는 앞으로 민물고기는 절대 키우지 않을 생각이다. 평생 동경하였던 맑은 계곡물 속 생물들을 잊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집에서 수족관 모터가 돌아가는 동안까지는 새코미꾸리와의 추억과 교감만은 영영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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