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에 찾으려던 마곡사를 늦은 가을에 찾게 되었다. 마침 올해 늦은 단풍이 충청권에서 절정을 이룬 날, 태화산 산행후 만난 충남 공주 마곡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다운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https://www.gongju.go.kr/tour/sub01_01_05.do
- 공주 마곡사는? : 마곡사가 위치한 물과 산의 형세는 태극형이라고 하여 『택리지(擇里志)』, 『정감록(鄭鑑錄)』 등에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고 있다.
절의 창건 및 사찰 이름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전한다. 첫 번째는 충청남도 청양군 장곡사와 공주 마곡사, 지금은 없어진 충청남도 예산시 안곡사 세 절을 이 지역에서는 삼곡사라고 불렀고, 긴골·삼골의 이름을 장곡(長谷)·마곡(麻谷)으로 바꾸었다는 설이다. 두 번째는 신라시대의 승려 무염(無染)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공주 마곡사를 지을 때 스승인 마곡보철(麻谷寶徹)을 사모하는 뜻에서 공주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이다. 세 번째는 절을 세우기 전 이곳에 마씨(麻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공주 마곡사라 하였다는 설이다.
공주 마곡사는 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전기까지 약 200년 동안 폐사가 된 채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고 있었는데, 1172년(명종 2)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지눌이 절을 중창하려고 할 때 도둑들에게 물러갈 것을 명하였으나 도둑들이 오히려 지눌을 해치려 하자 지눌은 공중으로 몸을 날리는 신술(神術)로써 많은 호랑이를 만들어 도둑에게 달려들게 하자 도둑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거나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지눌은 왕에게서 전답 200결(結)을 하사받아 공주 마곡사를 중창하였다. 당시에는 건물 수가 지금의 배가 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렸다. 그 뒤 60년 동안 폐사된 채 방치되었다가 1651년(효종 2) 각순(覺淳)이 대웅전과 영산전, 대적광전 등을 중수하였다. 일제강점기 31본산(本山) 시대에는 충청남도 지역의 100여 사찰을 관장하는 본산이었다.
또한 공주 마곡사는 김구(金九)[1876~1949]와 인연이 깊다. 김구는 대한제국 때 일본인 스치다 조스케[土田壞亮]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나루에서 죽인 뒤 붙잡혀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공주 마곡사에서 승려로 가장하여 살았다. 지금도 대광보전 마당에는 김구가 심은 향나무가 있는데, 나무 옆에 ‘김구는 위명(僞名)이요 법명은 원종(圓宗)이다’라고 쓴 푯말이 있다.
현재 공주 마곡사는 70여 개의 말사(末寺)를 관장하고 있다. 공주 마곡사는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있을 만큼 봄 경치가 뛰어나다. 백련암에서 바라보이는 전망은 매우 빼어나며, 북가섭암의 바위 뒤에 있는 천미장군수(天米將軍水)는 물맛이 좋기로 이름난 약수이다. 또 공주 마곡사 앞 냇가 암벽에는 부여군 고란사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다.
2018년 1월 22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9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지정문화재로는 보물 7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6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5점 등 총 18점이 있다.(디지털공주문화대전 참조)
- 평일임에도 수많은 인파가 몰린 마곡사의 단풍은 이번 주말이 절정일 것으로 보인다. 예상을 뛰어넘는 마곡사의 가을 풍경은 진정한 힐링의 하루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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