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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란 가을 하늘과 깨끗한 서울의 모습

by 日新우일신 2022.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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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오후, 서울 남산의 맑은 가을  하늘과 서울 시내 풍경』

 

■ 나들이 개요

 

- 강력한 태풍이라던 힌남노가 밤새 한반도 남단을 휩쓸고 지나간 아침.

언론과 정부의 호들갑으로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 수도권은 별다른 피해없이 날이 밝았다. 여의도 사무실에서 출근해서 일을 하던 중 무심코 창 밖을 바라보다 문득 필(?)이 꽂히고 말았다.

 

- 비오고 바람불면 나타나는 맑은 하늘. 그것이다!!

오후에 반차를 쓰기로 하고 집에 있던 마나님을 호출하였다. 이런 날에는 미친 척 하루 제끼는(?) 여유도 필요한 법이다. 기가 막힌 남산 조망을 기대하며 마누라와 함께 종로3가역에서 내렸다.

 

 

■ 5천원 짜리 맛좋은 점심 - 종로3가 시골전집

▼ 종로3가 시골전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순두부찌개와 콩나물 비빔밥이 단돈 5천원이다.

식당이 워낙 바빠서 낮술 한 잔 못한 아쉬움도 감사한 마음으로 지워 버렸다. ▼

 

 

▼ 기분좋게 장충단공원에 내렸...건만 잠시 좌절한다.

집사람을 시켜 챙겨온 DSLR 카메라에 배터리가 빠져 있는 것이다.

지난주 산행 이후 배터리를 빼놓은걸 깜빡 하였으니.. ▼

 

 

▼ 동국대를 바라보며 그냥 집으로 갈까 잠시 고민하다 일단 순환버스에 오르기로 했다. ▼

 

 

▼ 남산 정상까지는 순식간이다. ▼

 

 

■ 서울 남산 소개자료

늘 익숙한 것에 소홀한 법이다. 서울 남산에 관한 공식 소개자료를 새삼 살펴 보았다.

- 높이 265.2m. 대부분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쪽의 북악산, 동쪽의 낙산(駱山), 서쪽의 인왕산(仁旺山)과 함께 서울 중앙부를 둘러싸고 있다. 목멱산(木覓山)·종남산(終南山)·인경산(仁慶山 또는 引慶山)·열경산(列慶山)·마뫼 등으로도 불렸으나, 주로 목멱산이라 하였다.
조선태조가 한양(漢陽)을 도읍으로 정하였을 때 남산은 풍수지리설상으로 안산(案山) 겸 주작(朱雀)에 해당되는 중요한 산이었다. 도성(都城)도 북악산·낙산·인왕산·남산의 능선을 따라 축성되었다.
지금도 남산 주변에는 성곽의 일부가 남아 있다. 남산의 정상에는 조선 중기까지 봄·가을에 초제[醮祭 : 성신(星辰)에게 지내는 제사]를 지내던 목멱신사(木覓神祠), 즉 국사당[국사당(國祀堂), 또는 국사당(國師堂)]이 있었다.
또한 조선 시대 통신 제도의 하나인 봉수제(烽燧制)의 종점인 봉수대가 있어 국방상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전국 각지와 연결되는 남산의 봉수 중 제1은 양주 아차산(峨嵯山)에 응하는데, 이는 경기도·강원도·함경도와 연결되었으며, 제2는 광주 천천령(穿川嶺)에 응하여 경기도·충청도·경상도와 연결되었고, 제3은 무악(毋岳) 동쪽 봉우리에 응하여 경기도·황해도·평안도와 연결되었다.
제4와 5는 제1·2·3이 육로로 이어지는 데 반하여 해로로 이어지는 봉수로였고, 제4는 무악 서쪽 봉우리에 응하여 경기·황해·평안도 해안 지방과 연결되었으며, 제5는 양천현 개화산(開花山)에 응하여 경기·충청·전라도 해안 지방과 연결되었다. 지난날 통신 제도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던 남산은 현재 방송탑이 정상에 세워져 전망대 시설을 갖춤으로써 관광자원으로 이용된다.
또한 이와 동시에 남산은 각지로 매스미디어 전파를 발송하는 중요 기능을 하고 있다. 서울의 발달로 시가지가 확장됨에 따라 교통의 장애가 되어왔던 이 지역에 산을 둘러 일주할 수 있는 순환도로가 만들어졌고, 1·2·3호 터널이 뚫려 있어 교통의 장애를 극복하고 있다.
우리 「애국가」에 남산의 소나무들이 철갑을 두른 듯하다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남산에는 원래 소나무들이 울창하였으나 일본인들이 우리의 정신을 빼앗기 위하여 소나무를 베어내고 아카시아 등의 잡목을 심어 산의 경관을 많이 해쳤다.
또한 8·15광복 이후 무질서한 개발로 자연이 많이 훼손되었으나 최근 들어 개발제한구역의 설치와 함께 녹화사업에 노력한 결과 사계절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남산의 동·서·북쪽의 사면 일대에는 자연공원인 남산공원이 설치되어 서울 시민의 휴식처로 제공되고 있다. 또한, 자연 학습장이 설치되어 학생들의 자연 학습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남산이 처음 시민공원으로 개발된 것은 1910년의 일로, 당시 공원 표지로 세웠던 ‘漢陽公園(한양공원)’이라는 고종의 친필 비석이 옛 통일원 청사 옆에 있다.
현재 산정에는 서울타워라 불리는 방송탑과 팔각정이 있으며, 이곳은 케이블카로 오르내릴 수 있다. 산의 서쪽 사면에는 국립과학교육원, 안중근(安重根)의사기념관과 동상, 백범광장(白凡廣場)과 김구(金九)의 동상, 남산도서관·용산도서관·식물원, 이황(李滉)·황희(黃喜)·정약용(丁若鏞)의 동상 등이 있고, 소월시비(素月詩碑)도 있다. 북쪽 사면에는 숭의여자대학·리라초등학교가 있다.
동쪽 사면에는 동국대학교·국립극장·한국자유총연맹 등과 장충단공원이 있다. 장충단공원은 조선 시대에 도성 남쪽을 수비하던 남소영(南小營)이 있던 자리이며, 고종 때 장충단(奬忠壇)을 세운 뒤로 그 이름을 따서 붙인 명칭이다.
이곳에는 청계천 복개 당시 옮겨온 수표교(水標橋)가 놓여 있으며, 부근에는 리틀야구장·테니스코트·수영장 등이 있어 공원 지역과 함께 시민들의 운동 시설로 제공되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 평일 오후인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 ▼

 

 

▼ 카메라가 있었더라면 전망대를 올라 갔을텐데...

핸드폰으로 찍는 사진은 왠지 보람이 없다. ▼

 

 

▼ 모처럼 만난 파란 하늘을 휴대폰으로 찍어야 한다니...

아까운 마음에 김이 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

 

 

▼ 오늘 남산에는 유난히 외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아이들까지 동반한 것으로 보면 주한 외국인들도 남산을 즐겨 찾는 모양이다. ▼

 

 

▼ 그래도 북한산 일대와 수락산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기분이 상쾌해졌다. ▼

 

 

▼ 공짜 3D 비전 관람도 해보고, ▼

 

 

▼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 들고 전망대 의자에 앉았다.

오른쪽부터 삼성산, 관악산, 청계산이 역광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

 

 

■ 숭례문 탐방

▼ 순환버스를 타고 남산을 내려와서 화재 이후 지나치기만 했던 숭례문을 통과해 본다. ▼

 

 

■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서울로 7017)

▼ 내친 김에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서울로 7017)도 처음 걸어 보았다.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한 걸어볼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이다. ▼

 

 

▼ 어쨌든 늘 차로 지나 다녔던 고가도로를 느긋하게 걸어보는 것도 새로운 느낌이다. ▼

 

 

▼ 서울역전 우체국 앞에서 인천 가는 버스를 탄다.

저 곳은 40년도 넘은 오래전에 등교하기 위해 매일 버스를 갈아타던 장소이다.

세월의 덧없음에 새삼 가슴이 시려온 서울시내 관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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