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은산 산행을 마치고 강진의 관광지를 돌아 보았다. 세계모란공원, 김영랑생가, 시문학파기념관을 둘러보며 새삼 문학과 역사를 떠올리며 서정적 감상에 빠져들어 본 시간이었다.
▼ 한겨울 꽃구경을 위하여 사계절모란원으로. ▼
▼ 역시나 모란은 흔적이 없다. ▼
▼ 강진을 대표하는 시인이라면 김영랑만 알고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김현구 시인은 사후 재평가가 이뤄진 강진의 인물이다. 영랑과 불과 한 살 차이, 어린 시절을 어울려 지내며 문학 동인활동도 함께 했던 그는 지극히 내성적이었던 모양이다.
김영랑이 9.28 서울 수복 다음날 사망한 며칠 뒤에 김현구도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참으로 기구한 인연이라 하겠다. ▼
http://www.n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6926
[강진인물사]현구 김현구 시인(1904~1950) - 강진일보
6.25 전쟁중 인민재판 받고 사형당해 영랑 김윤식 사망 후 나흘만의‘참변’ 영랑 김윤식 선생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9월 29일 밤 서울의 내과병원에서 절명한다. 며칠전 피난처에서 맞은 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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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을 대표하는 시인 영랑의 생가를 둘러본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의 봄을.
- 영랑을 대표하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란 작품은 그가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와의 사랑에 실패하고 지은 시로도 알려져 있다. 아래 링크로 걸어둔 자료가 모두 사실이라면 당시 최승희의 나이를 감안할 때 영랑이 그녀의 첫사랑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https://segye.com/view/20161118002182
['전설의 무희' 최승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1〉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최승희 모티
왜 최승희인가. ‘전설의 무용가’ ‘세기의 춤꾼’ ‘원조 한류 스타’ …. 한세기를 풍미한 예인 최승희를 가리키는 화려한 수식어들이다. 그는 정주영, 백남준보다 먼저 세계에 한국을 알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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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연의 아픔에 좌절한 김영랑이 목을 맨 장소가 이 곳, 장독대 옆 동백나무였다고 한다. ▼
-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103238439Q
[이야기 시] 최승희를 사랑한 영랑이 목매 죽으려 했던 나무가…
[이야기 시] 최승희를 사랑한 영랑이 목매 죽으려 했던 나무가…, 고두현 기자, 사회
www.hankyung.com
▼ 시문학파기념관, 전시실도 둘러 보기로 한다. ▼
- 시문학파는 1930년대 시전문지 『시문학』을 중심으로 순수시운동을 주도했던 문학 유파이다.
그 핵심인물은 박용철(朴龍喆)과 김영랑(金永郎)이다. 여기에 정인보(鄭寅普) · 변영로(卞榮魯) · 이하윤(異河潤) · 정지용(鄭芝溶)의 참여로 『시문학』 창간호가 발간되었고, 뒤에 김현구(金玄鳩) · 신석정(辛夕汀) · 허보(許保)가 새로 참가하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시문학파는 이들만을 지칭해야 할 것이나, 시문학파의 범위를 넓게 보는 입장에서는 이들과 경향을 같이하는 『문예월간(文藝月刊)』 · 『문학(文學)』 · 『시원(詩苑)』에 참여한 문인들까지도 포함시켜서 시문학파를 해외문학파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문예월간』이나 『문학』은 범문단적인 종합 문예지였던 만큼 여기에 작품을 발표한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동인적(同人的)결속이나 이념적 유파 의식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시문학』 동인들만으로 범위를 축소시키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의 정치적 경향시(傾向詩)에 반발하여 문학에서 정치성이나 사상성을 배제한 순수 서정시를 지향하고자 한 점이 가장 중요한 특색이다.
1920년대의 감상적 낭만주의 시나 민요시 또는 카프의 경향시가 모두 자유시의 특성에 대한 명백한 자각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시로서의 현대성을 논하기에 미흡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시문학』에 실린 김영랑 · 정지용 · 박용철 등의 작품에서는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조화에 의한 자유시가 쓰여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시에서 언어의 조탁(彫琢)이라는 면에 그들이 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하였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시의 언어가 산문이나 일상적인 언어와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현대시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라면, 김영랑을 중심으로 한 시문학파가 이 방면에서 거둔 성과는 괄목할만한 것이다. 또 뒤에 오는 시인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시의 구문(構文)이란 음성 구조와 의미 구조의 적절한 조화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데 대체로 1920년대의 시는 의미 구조 쪽으로만 치우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김영랑의 시에서는 의도적인 호음조(好音調) · 음성상징(音聲象徵) · 압운법(押韻法) · 음보율(音步律) 등 음성 구조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찾아볼 수 있다. 또 음성 구조와 의미 구조 사이의 조화와 긴장을 통한 창조적 리듬을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김영랑의 시는 김소월의 민요시보다도 한 걸음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고 그만큼 현대성을 지니게 된다.
또 다른 중요한 특색으로 시문학파의 시에서 은유와 심상이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물론, 그 이전(1920년대)의 시에도 은유나 심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문학파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질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1920년대의 은유나 심상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대부분인 데 비하여 시문학파의 은유나 심상은 시의 중요한 자산으로서 의식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은 정지용 등의 시적 성과를 통하여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시문학사에서 시문학파를 현대시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상당히 타당한 근거를 가진 입론(立論)이며, 시창작 이외에도 박용철의 시론이나 서구 시 번역 분야에서의 이하윤의 활동도 이들의 현대성을 뒷받침하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 현대문학지가 눈에 뜨인다.
현대문학은 8,90년대의 10여년 동안 내가 거의 빠짐없이 보았던 문예지 가운데 하나이다. ▼
▼ 옛날 마을 공동의 우물로 사용되었다는 탑골샘 구경을 끝으로 산행과 짧은 관광을 모두 마친다. ▼
https://www.mdilbo.com/detail/etc/477832
봄이오는 길목에 강진 영랑 생가를 가다
모란 꽃망울 터뜨리는 찬란한 슬픔의 봄 기다리는 듯강진고을 부농 맏아들로 태어나유년기 친구들과 어울리며 성장13살때 결혼했으나 다음해 사별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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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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